세계속의 한류

[책 리뷰] 소설 '파친코(Pachinko)' - 이민진 작가

뽀모도로 2022. 8. 7. 05:44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 1989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2017년 출간된 화제작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애플tv 의 오리지널 시즌1을 인상 깊게 봤는데, 책을 먼저 봤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owever, 동네 도서관에 있길래 예약후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영접했습니다.


 

이 소설은 1910년~ 부산에서 일본으로 이주하여 살아온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영문판 원작은 책1권에 연도별로 나누어 1부, 2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어 번역판은 2권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1910년대 부산 영도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던 미망인 '양진'과 10대의 어린 딸 '선자'.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과 처세술 등을 통해 강인하고 올곧은 성격으로 자란  '선자'는 부산 영도시장에서 '한수'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를 임신한 후에야 한수가 일본에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이 없던 한수의 후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일본에 선교사로 가기 전 선자네 모텔에서 잠시 묵게 된, 갑작스런 폐병으로 장기 요양 중이던 목사 '이삭'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조국과 가족을 떠나 만삭의 배를 이끌고 '이삭'을 따라 일본 오사카에 정착하는 선자.  '한수'와의 아들 '노아', '이삭'과의 아들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대서사시입니다.

 


 

이들은 식민지시절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인들의 멸시와 탄압,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이를 탈피하고 일본의 평범한 시민으로 대접받고 살고자 미국 유학, 일본 내 최고 학부 와세다대학 입학 등 교육에 힘쓰고, 부의 획득 등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아무리 용을 써봤자 일본 내에서의 조선인(자이니치)은 파친코 사업을 하는 천박한 야쿠자나 돼지우리에 사는 가축과 동급인 사람들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쯤에서, 일본에서 그 멸시를 받으면서도 광복후에 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는데,

이에, 일본아이들의 괴롭힘으로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파친코 사업으로 큰 부를 획득한 자이니치 2세 모자수가 책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태어나 어눌한 일본식 한국어를 하는 나 같은 사람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이라고 하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from Hancinema

 


 

이민진 작가는 1968년 한국에서 태어나 7살 때 미국 이민을 가게 됩니다. 로스쿨 졸업 후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Japanese American인 남편의 일본 발령으로 일본에 살면서 '파친코'라는 책의 영감을 얻게 됩니다. 1989년 일본의 한 중학교에서 조센징이라며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던 자이니치 소년의 투신자살 뉴스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고, 수많은 자이니치들과의 인터뷰와 고증을 통해 28년에 걸쳐 완성되게 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선자의 자녀(노아, 모자수)들과 솔로몬(손주)에게 가장 큰 힘은 위대한 존엄성과 도덕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죠. 부패하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혐오스러워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이들의 인간성과 잠재력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특히 서사의 촉매가 되는 선자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던 당시 소극적인 여성상과 달리 혼전 임신을 하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안위가 편한 후처가 되기를 거부했으며, 생면부지의 일본으로 이주하고, 김치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역경을 헤쳐나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이민진 작가는, "부모에게서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선자는 자신의 몸을 지킬 줄 알고, 결혼의 이상향, 엄마가 된다는 것, 내 가족을 가치 있게 여겼다"며 "그는 쉬운 길 대신 어렵지만 지조 있는 길을 택했다. 쉽게 포기하는 전통적인 모습과 정반대인 용감한 여자다. 우리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시험을 통과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맺음말

 

미스터 선샤인, 여명의 눈동자 등 일전에 봤었던 일제강점기의 여타 드라마보다 격한 울림을 받았습니다.  드라마는 현재 미공개 시즌2,3로 아직 진행 중이지만, 완결판인 책을 다 읽고 나니 씁쓸하고 슬픈 감정의 여운이 꽤 오래 남습니다.  책과 드라마 장면의 시너지 효과로 등장인물과 사건이 논픽션의 실존 인물인 듯 느껴집니다. (실제로 드라마 에필로그에 자이니치 할머니들의 영상과 육성이 나오는데 책의 내용을 그대로 겪지는 않으셨겠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내 나라를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그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타국에 사는 소수민족 이민자로서 '뿌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COVID19 이후로 아시안 타겟 혐오범죄가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요즘, 어떤 민족이든 인종차별, 혐오 범죄 없는 안전하고 상호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봅니다.